PTSD 인한 마약 중독과 법정 불출석…시민권 못 얻은 채 한국행
박영주 기자(yjpark@kakao.com)
JUN. 24. 2025. TUE at 5:19 PM CDT

미국에서 50년 가까이 살아온 한국계 미군 참전용사가 한국으로 추방됐다. 15년 전 마약 전과 때문으로, 영주권자인 그는 추방 대신 자진 출국을 선택했다. 주인공 박세준(55) 씨는 지난 17일(월) 아침, 하와이 호놀룰루 공항에서 가족과 작별을 고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이로써 박 씨는 7세에 어머니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 온 이후 처음으로 모국 땅을 다시 밟게 됐다.
박씨의 기구한 사연은 NPR이 상세하게 보도했다.
7세 부모 따라 미국, 한국은 ‘낯선 나라’
박 씨는 지난 15년 전 마약 소지와 법정 불출석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이후 추방 명령이 내려졌다. 이민세관단속국(ICE)은 이달 초 박 씨에게 자진 출국하지 않으면 구금 및 강제 추방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이에 따라 박 씨는 스스로 출국을 선택했다.
박 씨는 출국 전 NPR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싸운 나라에서 이런 일을 겪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며 억울한 심경을 밝혔다. 그는 마약 전과자가 된 배경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꼽았다. 군대에서 총상을 입고 명예 재대한 이후에도 자신의 내면의 고통이 치유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박 씨는 7살 때 어머니 손을 잡고 미국 마이애미로 이주했으며, 1년 후 로스앤젤레스로 옮겨 학창 시절을 보냈다. 한국군 대령이었던 삼촌을 존경하며 군인의 꿈을 키웠던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 사회에 기여하고 자신을 단련하고자 미군에 입대했다.
‘파나마 침공’ 당시 총상, 명예 제대
20세에 기본 훈련을 마친 박 씨는 파나마에 파병됐다. 그는 1989년 미국의 마누엘 노리에가 정권 전복을 위한 ‘파나마 침공’(Operation Just Cause)에 투입됐다. 작전 중 그는 점심을 먹던 도중 파나마 병사들 총격을 받았고, 이때 등에 두 차례 총상을 입었다. 그는 “총에 맞은 순간 마비된 줄 알았다. 곧 ‘지금 죽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두 가지 ‘기적’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첫 번째는 근처에 살던 미군 병사가 그를 병원으로 긴급 이송한 것이었고, 두 번째는 총알 중 하나가 그의 인식표에 맞아 충격을 흡수한 것이었다.
박 씨는 미국으로 돌아와 명예 제대했고 퍼플 하트 훈장을 수여받았다. 하지만 정신적인 후유증은 깊고 오래 갔다. 그는 악몽에 시달렸고, 큰 소리를 듣는 것조차 두려웠다. 당시에는 PTSD라는 진단 개념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고, 그는 자신이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는 사실도 몰랐다. 주변에 도움을 청하지 못한 그는 결국 마약에 의존하게 됐고, 20~30대 동안 크랙 코카인 중독에 빠졌다.
그는 뉴욕에서 마약 거래 중 경찰에 체포됐고, 이후 법원에서 “더러운 소변 검사 결과로는 법정에 돌아오지 말라”는 판사의 말을 듣고 두려움에 도망쳤다고 NPR에 말했다. 그 결과, 그는 마약 소지와 법정 불출석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추방 대상이 됐다.
2009년, 박씨는 마약 및 보석 관련 혐의로 2년 6개월 동안 복역했다. 석방 후 ICE 요원들은 그를 구금하고 영주권을 취소했다.
그는 법원에 자신의 추방에 이의를 제기했고, 퍼플 하트 훈장 수상자라는 이유로 유예 처분을 받았다. 그는 이민 당국에 정기적으로 등록하고 술을 끊는다는 조건으로 미국에 머물 수 있게 됐다고 뉴스위크는 전했다.
미군 복무 불구 시민권자 아닌 이유는?
박 씨는 한동안 시민권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비시민권자로 지내는 데 큰 불편이 없다고 여겼지만, 법적 문제가 생기자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미군 복무 중 1년 이상 근무하거나 전시 상황에 단 하루라도 복무한 군인은 시민권 취득이 간소화될 수 있지만, 박 씨는 파나마 파병 기간이 12개월에 미치지 않았고, 당시 작전도 ‘적대 행위’로 분류되지 않아 해당 조항을 적용받지 못했다.
2009년부터 3년간 교도소에 수감된 그는 복역 중에도 마약을 접할 수 있었지만, 더 이상 마약에 대한 욕구를 느끼지 않았다고 밝혔다. 출소 이후에는 하와이로 이주해 자동차 딜러십에서 10년간 성실히 일했고, 두 자녀를 키우고 노부모와 이모들을 돌보며 평범한 일상을 유지해왔다.
“자녀들은 내 인생 최고의 축복”
그는 자녀들이 친절하고 책임감 있는 성인으로 자란 것을 “내 인생 최고의 축복”이라고 표현했다. ICE는 그를 우선 추방 대상으로 지정하지 않았기에 그는 수년간 매년 출입국관리소에 체크인하며 미국 내에 거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하와이 ICE 당국은 그에게 더 이상 유예는 없으며 자진 출국하거나 구금 및 강제 추방에 직면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박 씨는 비행기 탑승을 앞두고 친구들과 마지막 골프를 즐기고, 하와이 명물 마늘 새우를 맛보며 이별 준비를 했다. 그는 85세 어머니와 자녀들과 마지막 시간을 보냈으며, “이번이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보는 순간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뒤, 어린 시절처럼 다시 혼자 비행기에 올랐다. 이번에는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 나라, 한국행이었다.
박 씨는 “군 복무와 총상을 입었던 경험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내 인생의 일부이며, 지금의 나를 만든 여정이었다”고 NPR에 말했다.
@2025 박영주의 시카고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