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영광: 공의와 사랑이 만난 자리

시카고 여섯걸음교회 이상범 목사

시카고 여섯걸음교회 이상범 목사
시카고 여섯걸음교회 이상범 목사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은 단지 십자가의 순간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그 전에는 모욕과 조롱, 불법 재판과 폭행, 살을 찢는 채찍과 피의 희생이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수난은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감당하신 공의이자 사랑이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가 죄를 심판한 자리이며, 동시에 그 심판을 사랑으로 대신 감당하신 자리였다. 부활은 그 공의와 사랑이 완성된 증거이다 — 죽음이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 앞에서 무릎 꿇은 순간이다.

1. 모함과 모욕: 진리가 당한 수치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께 대한 심문은 모두 불법적이었다(마 26:57–68; 눅 22:66). 밤에는 재판을 열 수 없고(탈무드 Sanhedrin 32a), 증언은 두 사람 이상의 일치를 필요로 했다(신 19:15). 그러나 예수의 재판은 이러한 기본적 정의조차 무시됐다. 이는 단지 인간이 진리를 거부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불의한 세상 한가운데 자신을 내어주신 사건이었다.

칼 바르트(Karl Barth)는 ‘교회교의학 IV/1’에서 “예수는 진리로서 세상 앞에 섰고, 세상은 그 진리를 불의의 법정에 세움으로 스스로 심판을 받았다”고 썼다. 진리가 조롱당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정의가 오히려 드러났다. 그 분은 불의한 세상 속에서도 진리를 끝까지 지키셨고, 그 침묵과 순종이 하나님의 의를 완성했다.

2. 채찍질: 죄 없는 제물의 이미지

빌라도는 세 번이나 예수의 무죄를 선언했지만(요 18:38; 19:4, 6), 민중의 압박에 굴복해 그를 채찍질했다. Flagellum이라 불리는 로마의 채찍은 납과 뼈조각이 달려 살점을 찢어내는 형벌이었다. 단순한 고문이 아니라, 사람의 존엄을 철저히 파괴하는 폭력이었다.

무죄한 자가 고통받는 장면 속에서 우리는 구약 제사의 원형을 본다. 흠 없는 제물이 제단 위에 드려지듯, 예수는 죄가 없으나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셨다. 이사야의 예언처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다”(사 53:5). 요한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이를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는 사랑의 순종”으로 설명했다. 예수의 피흘림은 단지 형벌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를 위한 대속의 은혜였다.

3. 십자가: 생명을 쏟아부으신 완전한 헌신

골고다 언덕으로 향하던 예수의 걸음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순종이었다. 십자가의 형틀은 질식에 가까운 고통을 주는 처형법이었지만, 그분은 고통 속에서도 인류를 위해 기도하셨다(눅 23:34). 마지막 순간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요 19:34)은 단순한 생리적 현상이 아니라, 교회의 근원이 되었다.

요한 크리소스톰은 “그분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은 교회의 탄생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그리스도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로 교회가 세워졌고, 따라서 교회는 그 피의 사랑과 공의 안에서만 존재 이유를 가진다. 교회가 세상을 향해 정의를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분의 희생이 우리 공동체의 생명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4. 부활: 공의의 완성, 승리의 선언

부활은 십자가의 고난을 무효화하지 않는다. 그 고난을 완성하고, 하나님의 공의가 사랑으로 승화되었음을 증언한다. 부활은 단순한 회복이 아니라, ‘새 창조의 시작’이다. 바울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전 15:20)고 선포했다. 사망의 질서가 뒤집히고, 하나님의 정의가 새로운 창조 질서로 들어선 것이다.

신약학자이자 성공회 주교인 니컬러스 토머스 라이트(N. T. Wright)는 “부활은 단지 위로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새롭게 다스리기 시작하신 사회적 선언”이라고 했다. 부활은 역사적이고 우주적인 하나님의 정의 선언이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한다. 교회는 부활의 증인이자, 하나님의 정의가 세상 속에 드러나게 하는 사랑의 통로로 부름받았다.

5. 부활 신앙과 오늘의 교회: 공의와 정의의 실현

부활 신앙은 개인의 내면적 위로를 넘어선 공동체적 현실이다. 초대교회는 부활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의 사회적 혁명으로 시작되었다. 그들은 재산을 나누고(행 2:44–45), 가난한 자를 돌보며, 사회적 계급 질서를 넘어 새로운 형제애의 공동체를 이루었다. 이는 단순한 자비심이 아니라, 부활의 정의가 삶으로 드러난 모습이었다.

오늘의 교회 역시 그 부활 신앙을 공동체적으로 구현해야 한다. 세상은 여전히 불의와 폭력, 경제적 양극화와 사회적 단절로 신음한다. 만일 교회가 이 현실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한다면, 십자가의 사랑도, 부활의 정의도 공허한 상징에 그칠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교회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실천하는 공동체로 서야 한다.

* 사회적 약자와 고통받는 이들을 돌보는 사랑의 정의를 실천하고,
* 거짓과 부패, 불의에 침묵하지 않는 공적 진리의 증언자가 되어야 하며,
* 경쟁과 소비의 문화 속에서도 화해와 섬김의 질서를 드러내야 한다.

교회의 정의 실천은 정치적 이념의 영역이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이 낳은 새 생명의 문화이다. 바르멘 선언이 선포했듯,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유일한 주이시며, 다른 모든 권력은 그분의 진리 앞에서 복종해야 한다.” 오늘의 교회는 이 선언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부활은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교회를 지금도 살아 움직이게 하는 능력이다. 십자가의 사랑을 품고 부활의 정의를 세상 속에서 실천하는 교회야말로, 하나님의 공의를 세상에 드러내는 살아 있는 공동체이다.

2026년 4월 1일

<여섯걸음교회는>

여섯걸음교회(담임목사 이상범)는 사무엘하 6장13절 말씀에서 모티브를 받아 하나님과 바르게 동행하며, 기쁘게 동행하기를 추구하는 예배공동체이다. 토요일오전 7시 아침예배와 주일 오전8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주소: 855 E Palatine Rd Suite 110, Palatine, IL 60074
*전화: 224-477-9058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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