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민권의 경계선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미국 시민권은 오랫동안 이민자들에게 가장 확고한 신분의 보루이자, 아메리칸드림의 종착지였습니다. 그러나 최근 두 건의 조치는 이 확신에 물음표를 던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출생시민권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판결, 또 하나는 법무부의 시민권 취소 우선순위 메모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별개의 사안 같지만, 근본적으로 미국에서 시민권을 둘러싼 법적·정치적 지형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1. 연방대법원: 출생시민권 제한 행정명령에 손을 들어주다
2025년 6월 말, 연방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불법체류자의 자녀에게는 미국에서의 출생에도 불구하고 자동적으로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도록 한 행정명령(E.O. 14160)에 대해 직접 위헌 판단을 내리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하급심에서 내려진 전국 단위 금지명령(nationwide injunction)의 정당성만을 다뤘고, 그 효력을 제한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 결과, 출생시민권에 대한 제한 명령은 소송에 참여한 당사자에게만 적용되고, 타 주에서는 효력이 발생할 수도 있는 사법적 공백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많은 이민전문가들은 최종적으로 이 행정명령 그 자체는 위헌으로 판단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만, 당분간 큰 혼란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2. 법무부: 이미 받은 시민권의 취소를 공언하다
대법원의 움직임과 더불어, 법무부는 6월 초 내부 메모를 통해 시민권 박탈(denaturalization) 절차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귀화절차를 통해 시민권을 획득한 이민자 중, 시민권 신청 당시 허위 진술, 중대한 사실의 은폐, 또는 공공안전에 대한 위협 행위가 발견될 경우, 민사소송을 통해 시민권을 취소할 수 있도록 적극 추진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은 형사재판이 아닌 민사절차(civil proceeding)로 진행되기 때문에, 입증의 기준이 형사사건보다 낮으며, 신속한 판결과 함께 시민권 박탈이 바로 추방절차로 직결될 위험이 큽니다. 시민권을 취득한 이들이, 그 어느 때보다 시민권을 잃을 수 있는 리스크에 노출되고 있는 것입이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 역시 슬로베니아 출신 이민 1세대이며, 그녀가 시민권을 받은 것은 트럼프와 결혼 이후인 2006년이었습니다.
트럼프 일가는 조부가 독일에서 이민 온 가문으로, 원래 성은 드럼프(Drumph)였다고 전해집니다. 이 이름은 독일어 트루메(Trumme), 즉 ‘북치는 사람’(Drummer)에서 유래합니다.
유럽에서 성은 그 집안의 직업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말 그런 탓인지,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보면 가끔 사방에서 북을 치는 사람처럼 시끄럽고, 선동적인 모습도 보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 북소리가 급기야 이민의 종착지였던 ‘시민권’의 영역까지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글=김영언 변호사(나우이민 대표, ryan@nowi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