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생각] 정말 외람되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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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와 산 지 벌써 수 년 지났어도 여전히 ‘영어’는 넘사벽이다. 별 짓을 해도, 온통 신경을 써도 올 때 수준과 별반 차이 없다. 쓰질 않으니, 늘질 않는다. 오죽하면 ‘대학생 친구가 필요해’했던 열사 마음을 이해할까. ‘금발 친구가 필요하다’ 없으니, 안 생기니 그런 마음도 야속하다. ‘5년 뒤면 들릴 것’ 그렇게 말해 꿈 심어줬던 그때 뉴욕 살았던 지인도 원망스럽더라.

그래도 유식해지려, 공부는 무식하게 한다. 네가 이기냐, 내가 이기냐 어차피 멈추지 않을 싸움이다.

그렇게 배운 표현 중에 ‘with all due respect’란 게 있다. 유튜브 영어 선생, ‘어려우면 이걸 써라’ 얘기해준 ‘No offense, but…’ 이것과 같은 뜻이다. 두 표현 모두 대놓고 대들기 어려운 사람에게 쓰는 매우 정중한 표현이다. 직장 상사나 선배 등 윗사람 의견에 반하는 얘기를 할 때 함께 쓰면 효과 그만이란다. 당연히 뒷말은 듣는 이가 들어 유쾌하지 않은 내용일 테고.

한국말로 번역하면 ‘외람된 말씀이지만’ ‘말씀드리기 송구스럽지만’ ‘죄송합니다만’ 뭐 이런 뉘앙스. 이 표현을 접할 때면 상대에게 쩔쩔매는 모습이 연상된다. ‘I hate to say this’ 이렇게 편하게 말할 수 없는 상대에게 어쩔 수 없이 써야 하는 관용구.

한국에서 한 기자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에게 질문하면서 ‘정말 외람되오나…’ 이런 표현을 써 입길에 올랐다. 그가 뭘 ‘2개나’ 물었는지 정작 알맹이는 없고 이 표현만 회자하면서 조리돌림 당하는 중이다. 나름 자기변명을 내놓았지만, 봉변만 더 하는 모양이다.

댓글들도 후끈했다. 좋은 얘기 나올 리 만무, “저렇게 알아서 기는 기자는 처음 봤다” 낯 뜨거운 평가들이 줄을 이었다. “예의를 갖추려” 했다는 해명에 담은 함의만큼 조롱과 비난은 더 거셌다.

‘외람되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형용사인 이 단어는 ‘하는 짓이 분수에 지나치다’로 풀이된다. 기자가 질문하면서 이런 말을 쓴다는 건, 쓸 수 있다는 건 생각도 못 했다. 상대 직급이 아주 높거나, 상대가 무섭거나 그런 게 아니라면 일상에서도 쓸 일 별로 없는 그런 말이다. 대통령 당선인이 자신보다 직책이 높다 생각할 이유 없을 테고, 무서울 리는 더 만무하고.

과해 비례(非禮)가 됐다. “이런 질문 드려도 될지 모르겠는데” 혹은 “괜찮다면 (답해 주시겠습니까)” 이렇게 ‘예의 갖출’ 표현도 많다.

그래도 영어 공부 헛한 건 아니더라. 이 얘기 듣자마자 ‘with all due respect’가, ‘No offense, but…’가 떠올랐다. 연관 표현 ‘If you don’t mind me asking,’ 이것까지. 차라리 후자였으면 이렇게 욕은 안 먹지, 그런 생각도 했다. 정작 미국 사람한테는 써먹지도, 써먹을 기회도 없는 영어가 이렇게 소환됐다.

아무리 해도 입에 안 붙던 이 표현들, 이참에 확실히 배웠다. 앞으로도 ‘with all due respect’ 이 말 쓸 일은 없겠다 싶다. 게다가 ‘No offensive, but…’인 줄 알았다. 명사(offense)가 맞다. 그만큼 영어가 어렵다. 기레기 안되긴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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