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여섯걸음교회 이상범 목사
칼바람이 부는 미시간 호수의 도시 시카고에도 어김없이 성탄의 계절이 찾아왔다. 12월이 되면 시카고 지역 한인 사회는 곳곳에서 들려오는 성탄 음악회의 소식으로 분주해진다.
돌이켜보면 시카고 지역의 성탄 음악회는 단순한 행사를 넘어선 특별한 의미를 지녀왔다. ‘시카고 장로 성가단’이나 ‘시카고 한인 여성 합창단’의 정기 연주회, 그리고 여러 교회가 연합하여 울려 퍼지게 했던 웅장한 ‘헨델의 메시아’ 공연들은 이민자들의 고단한 타향살이를 어루만지는 위로의 손길이었다. 신앙의 유무를 떠나 교회의 문턱을 낮추고 이웃을 초청해 따뜻한 멜로디로 복음을 전하는 귀한 선교의 장이기도 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을 기뻐하며, 그 기쁨을 음악이라는 그릇에 담아 나누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아름답고 거룩한 일이다. 그러나 이 귀한 사역이 해를 거듭하며 혹시 ‘매너리즘’이라는 덫에 걸려 있지는 않은지 조심스럽게 돌아보게 된다. 매년 반복되는 행사, 으레 해야 하는 연례행사로 전락해 찬양의 본질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화려한 조명과 웅장한 오케스트라, 청중의 박수갈채 속에 정작 찬양을 받으셔야 할 주인공은 가려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무대 위 주도권 다툼,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음악회를 준비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때로 안타까운 소식들이 들려오곤 한다. 솔리스트 선정 문제나 지휘자와 연주자 간의 의견 대립, 혹은 주도권(Hegemony) 다툼으로 인해 잡음이 생기는 경우다. 이는 찬양의 대상이 누구인지 망각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찬양대나 연주팀이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 음악회의 진정한 관객은 ‘회중’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회중은 구경꾼이 아니라, 연주자와 함께 마음을 모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동참자들이다.
그런데 준비 과정에서 인간의 욕심이 개입되면, 그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 아니라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공연’으로 변질된다. 찬양을 준비하는 과정은 일반 음악회의 리허설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야 한다. 연습 시간 자체가 예배여야 하며, 화음을 맞추기 전에 마음을 맞추는 기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역사 속에서 배우는 찬양의 본질
우리는 역사 속에서 찬양의 본질이 어떻게 흐려졌고, 또 어떻게 회복되었는지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음악사학자 도널드 그라우트(Donald J. Grout)의 ‘서양 음악사’와 교회사 기록들을 살펴보면, 중세 시대의 교회 음악은 전문 성가대(Schola Cantorum) 중심으로 발전했다.
다성 음악(Polyphony)의 화려한 기교는 정점을 찍었지만, 라틴어 가사와 복잡한 선율 속에서 회중은 침묵해야 했고 찬양의 내용은 전달되지 못했다. 음악적 형식미가 예배의 본질인 ‘메시지’를 압도해 버린 것이다.
이에 반기를 든 것이 16세기 종교개혁이다. 마틴 루터는 “음악은 신학 다음으로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이라 칭하며, 사제들의 전유물이었던 찬양을 회중에게 돌려주었다.
자국어로 된 회중 찬송(Chorale)을 통해 모든 성도가 함께 하나님을 노래하게 했다. 장 칼뱅 역시 화려한 기교가 가사를 가리는 것을 경계하며, 영혼의 깊은 울림이 있는 시편 찬송을 강조했다. 종교개혁가들이 되찾고자 했던 것은 ‘음악적 테크닉’이 아니라 ‘고백적 신앙’이었다.
곡조 있는 기도, 영혼의 호흡
오늘날 우리의 성탄 음악회는 어떠한가? 인간의 예술성이 발휘된 고도의 음악적 테크닉은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이며, 그것이 최고로 발현될 때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낀다. 하지만 그 테크닉이 찬양이 가진 고백적 의미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
아무리 천상의 화음을 낸다 하더라도, 그 안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진실한 고백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것은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다.
합창이든 기악 연주든, 모든 형태의 찬양은 ‘곡조 있는 기도’여야 한다. 기도가 영혼의 호흡이듯, 찬양 또한 우리 영혼이 하나님을 향해 내쉬는 호흡이어야 한다. 화려한 기교를 뽐내는 자리가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 오신 아기 예수를 향한 겸손한 경배가 그 중심에 있어야 한다.
2025년의 크리스마스를 기대하며
이번 성탄 시즌, 시카고의 많은 교회와 신앙 단체들이 준비하는 음악회가 단순한 ‘문화 행사’를 넘어 ‘거룩한 제사’가 되기를 소망한다. 무대 위에서는 사람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만이 드러나고, 객석에서는 감상이 아닌 감격과 결단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준비하는 이들의 땀방울이 기도가 되고, 연주되는 음표 하나하나가 진실한 신앙 고백이 될 때, 우리의 음악회는 이민 사회를 위로하는 차원을 넘어 하나님이 흠향하시는 거룩한 향연이 될 것이다. 올겨울, 우리의 찬양이 진정으로 그분이 오심을 기뻐하는 노래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2025년 12월 14일
<여섯걸음교회는>
여섯걸음교회(담임목사 이상범)는 사무엘하 6장13절 말씀에서 모티브를 받아 하나님과 바르게 동행하며, 기쁘게 동행하기를 추구하는 예배공동체이다. 토요일오전 7시 아침예배와 주일 오전8시 예배를 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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