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생각] 잘 가라, 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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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선배’라고 불렀는지, ‘박 기자님’이라고 불렀는지 모르겠다. ‘오빠’라고 부르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시카고에 와 취재 현장을 다니면서 그를 만났다. 어느 단체가 하는 행사든, 누굴 만나든 그가 있었고, 그만큼 그를 찾는 곳도 많았다. 발이 넓어도 이렇게 넓을 수 있나, 시카고 모든 대외 활동의 선봉대이자 행동대장으로 그가 있었다.(지금 생각하면 ’여자 박건일‘이었다) 내겐 늘 고마웠다. 시카고 잘 정착하게 해준 몇몇 안되는 사람의 맨 앞 혹은 적어도 세 손가락 안에는 드는 사람. 왕성한 그의 활동력 뒤에서 난 ’참, 시카고 일꾼‘ 그런 생각을 했다. 사람 됨됨이는 또 말해 무엇하랴. 다 퍼주고도 더 줄 성싶은 사람. 누가 보면 ’남매냐‘ 할 정도 피붙이 아닌 나를 챙겨주느라 고생했다.

결혼 한다고 해서 날 성당 결혼식에 처음 들인 사람이기도 하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다른 신부들보다 더 웃음이 크고 많았다. 아빠 앞에선 가녀린 딸, 식을 마치고 만나 전한 반가운 인사와 축하, 그날 예뻤다.

“좋냐?” 물으면 말보다 큰 웃음으로 행복한 결혼 생활을 긍정했다. 끝내 집들이는 못 갔다. 코로나19 이 팬데믹만 아니었으면 박 기자 집 초대 안 했을 그가 아니다. 그게 아쉽다.

딸을 낳아 이름을 아인이라 지었다. 커가는 아이 땜 행복한 그의 모습을 페북에서 보며 나도 기뻤다. 페북에서 보니, 간헐적 교류에도 늘 곁 같았다.

그러다 세밑 그가 아프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의 상황을 전해 듣고 너무 놀라, 잠깐 말을 잃었던 기억. 어떻게 그런 일이… 그러면서도 ‘괜찮을 거야’ 했다. 나 두고, 예나 두고 하기에도 부족한 기도 그를 위해 했다. 후배로서, 친구로서, 동지로서 그가 필요한 것은 나뿐 아니다. 그만큼, 그래서 그가 훌훌 털고 일어날 거라 믿었다. 기도 응답은 그렇게 왔어야 했다.

그가 떠났다. 페북 지인의 추도를 보고야 알았다. 00:1501272023. 하나님이 이날 이 시각 그를 데려갔다. 9일 전엔 그의 생일이었다. ‘주영 생일 축하해. 곧 보자, 꼭‘ 페이스북 남긴 기원이 그만, 심장처럼 툭 땅에 떨어졌다.

그의 마지막 페북 글은 공교롭다. 한국에서 30년 사목한 천요한 신부 부고 기사를 공유하며 “울 신부님.. 늘 그리운 분… 신부님과 함께했던 시간들 너무 감사했고 사랑합니다. 주님 안에서 편히 잠드세요. ㅜㅜ”라 적었다. 바보다. 그 말을 이제 눈물로 우리더러 쓰라 한다. 못됐다. ‘함께 했던 시간들 감사했고 사랑한다’ 우리더러 말하라 한다.

남은 이들 슬픔이 소셜미디어에 가득하다. 온통 눈물투성이다. 나도 보탰다. 그렇게 가서는 안 될 사람이 속절없이 떠났다. 나쁜 사람이다. 숙제만 남겨놓고 혼자만 천국 갔다. 애끊는 이, 채 다 보듬지도 못하는 작별.

잘 가라, 주영.

22:270127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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