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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 사진 앞 꽃 즐비…추모객들 예배·위로·포옹 ‘연대’
*박영주 기자(yjpark@kakao.com)
*JUL 10. 2022. SUN at 6:33 PM CDT
10일(일), 하이랜드 파크 다운타운의 모든 통행금지가 풀렸다. 지난 7월 4일 독립기념일 퍼레이드 중에 발생한 총격 사건 이후 7일 만이다. 사람과 차량은 총격 현장을 자유롭게 이동하고 있으며, 현장 인근 모든 비즈니스도 정상 영업을 재개했다. 화창한 날씨, 아직 현장 인적은 뜸하고 근처 식당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적지만 경찰 폴리스 라인 없는 거리를 사람들이 반긴다.
전날인 9일(토) 사건 현장을 방문했다. 하이랜드 파크 다운타운, 센트럴 길(Central Ave.)과 세인트존스(ST Jones Ave.) 길 교차로 인근. 어디쯤 총격 사건이 발생했는지는 알고 있었고, 가장 가까운 데 차를 댈 요량이었는데, 차를 주차한 공용 주차장 한쪽이 바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곳이었다. 오전, 추모 공간에서는 라틴계 희생자들을 위한 천주교 추모 예배가 한창이었다. 사람들은 노래했으며, 더불어 기도했다. 남녀노소 인종 불문, 추모에 한마음인 사람들이었다.
이번 하이랜드 파크 총격 사건으로 숨진 이는 2살 아기를 남기고 희생된 30대 부부를 포함, 모두 7명이다. 대부분 어르신이고 이날 이 가운데 3명의 장례식이 다른 장소에서 처음 열렸다. 40여 명의 부상자 가운데 최연소인 8세 소년의 위독한 상황이 전해진 것도 불과 하루 전이었다. 안정을 되찾았다지만, 평생 걷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 소견이 더 마음 아픈 뉴스였다. 더 이상의 희생자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8살 쿠퍼 로버츠와 그 가족을 위한 고펀드미 계정에는 후원이 답지하고 있다.
예배가 끝나고 사람들 서로서로 부둥켜안고, 악수하고, 등을 두드리며 아픈 마음을 나눴다 희생자들 사진 앞 바닥에 가득한 꽃과 추모 팻말들. 애도하며 헌화하는 이들 한쪽에서 한 엄마가 2~3살 남짓 아이 둘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모습도 보였다. ‘하이랜드 파크 스트롱’(Highland Park Strong, 혹은 HP Strong)이란 글귀도 팻말로 혹은 손글씨로 여기저기 놓여있었다. 바닥에는 ‘총기 규제’(Gun Control Now) ‘평화’(Peace) 등 저마다 써놓은 글들이 가득했다.
추모 공간은 건너편 ‘참전용사 기념 공간’에도 마련됐다. 횡단 보도만 건너면 바로 그곳이다. 전쟁에 나갔다 숨진 지역 주민을 위한 추모비를 설치한 곳이다. 한국전 희생자 9명 이름도 보였다. 추모비 앞 리본을 단 하트 모양 7개 막대가 서 있고, 그 앞 역시 헌화한 꽃들로 가득하다. 즐비한 꽃과 양초, 글귀들, 인형 등 하나하나에 애끊는 가족의 사연, 이들을 향한 위로, 총격 사건 여파를 보듬어 안으려는 노력을 가득 담았다. 꽃향기만큼 진한 슬픔의 냄새, 누군가 흘렸을 눈물의 무게 이상 분위기는 무겁다.
취재 열기는 여전히 뜨거웠다. NBC5, ABC7 등 방송국 차량은 아마 며칠째 같은 장소에 붙박이로 있을 터였다. 기자들은 추모 현장 생생한 분위기와 추모객 목소리를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인터뷰에 응한 한 주민은 “이번 총격 사건이 내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시각 봉쇄된 도로 한가운데에서 흑인 남녀가 ‘총기 폭력 중단, 우리 아이들을 지키자’(End Gun Violence, Save Our Children)이 적힌 커다란 현수막을 펼쳐 보였으며, 예수님 십자가 고행하듯 커다란 십자가를 메고 나타난 남성도 사람들 눈길을 끌었다.
추모객 일부는 경찰 통제선 안쪽 총격 현장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했다. 폴리스 라인이 처져 있는 센트럴 길 저쪽이 총격 지점이다. 눈에 보이는 빨간 벽돌 건물에서 22세 총격 용의자인 로버트 ‘바비’ 크리모(Robert ‘Bobby’ Crimo) 3세가 약 80발의 총탄을 이쪽 피해 현장에 난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건물을 중심으로 일대가 동서남북 모두 막힌 상태. 경찰이 누구도 통제선 안쪽 출입을 막았다.
한 시간 넘게 추모 현장에 머물렀다. 오가는 길, 자전거 하이킹 중인 사람들을 조우했고, 추모 현장 조금 떨어진 곳 노상 카페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아이를 태우고 한 아빠는 자전거를 바삐 몰아 어디론가 갔다. 통제선 바깥 다운타운 도로에는 주말, 제법 차량 왕래도 잦다. 추모 현장을 지나는 차 안 창 밖으로 손 흔드는 사람도 봤다. 서로 다른 방식의 애도라 생각한다.
슬픔과 공포를 딛고 하이랜드 파크는 이제 일상으로 복귀한다. 엄청난 참사를 겪은 지난 일주일 하이랜드 파크 주민과 이를 위로하는 미국 전역, 전 세계 사람들의 연대가 이를 독려하고 있다. ‘힘내라, 하이랜드 파크’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은 계속 많을 것이다. 뭣보다, 한 지역 비극과 추모로 끝날 것이 아니라, ‘총기 규제’ 근본 해법을 찾기 위한 전체 구성원 노력도 절실하다. 제2, 제3의 하이랜드 파크 참사를 막기 위한 가장 현명한 수단이다.
내가 아는 미국, 그렇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에 현장을 빠져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힘내라 하이랜드 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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