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인 현실 저격 ‘푸른 호수’ 미나리 뒤잇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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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살 때 입양 추방당하는 한인 입양인 얘기…현실 공분, 눈물

영화는 목적을 가진다. 분명한 목적성이 사람 마음에 와 닿으면, 영화는 그렇게 소기의 목적을 이룬다. 영화가 갖는 힘이다. 콘텐츠가 갖는 숙명이기도 하다.

이 영화 ‘푸른 호수’(원제 Blue Bayou)가 그렇다. 포스터가 예뻐서 보기 시작한 영화, 선명하게 주제를 드러내고 그 방향으로 정주행할 때 그만 흠뻑 빠졌다. 미국에 살면서 낯설지 않은 주제, ‘입양인’을 정면으로 다뤘다. 어릴 때 미국에 입양됐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해 ‘서류미비’ 신분으로 사는 ‘미국인’. 언제든 이민국에 적발되면 생면부지 태어난 나라로 쫓겨가야 하는 미국 내 약 4만 명에 달한다는 ‘해외 입양인’ 이야기이다.

이 포스터가 좋아 보게 된 영화 ‘푸른 호수'(Blue Bayou). 답답하고, 먹먹하다.

맘이 힘들어서 그럴 수 있다. 영화를 보면서 눈물이 난 건 10 몇 년 전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볼 때 이후 첨인 거 같다. 그때 저녁 먹으며 아무 생각없이 보던 영화 눈물 함빡 쏟았던 그때. 죽었다 살아난 한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편의 아내가 장마가 끝나면서 다시 죽는다. 말도 안 되는 그 설정을 주인공들이 어찌나 구슬프게 풀어가는지 그만 거기에 젖어버렸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저 배우 누구지, 연기 잘하네’ 했던 남자 주인공 안토니오 역할은 바로 이 영화를 감독한 저스틴 전이 맡았다. 몰랐는데, 한인 등 이민자 사회를 주제로 다룬 독립영화들로 크게 주목받고 있는 감독이자 연기자. 제33회 선댄스 영화제 관객상을 받은 데뷔작 ‘국'(2017), 제13회 댈러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은 ‘미쓰퍼플'(2018) 등 ‘이민자’ 피폐한 삶이 그의 화두.

영화 ‘트와일라잇’에서 여주인공 벨라의 학교 친구 에릭으로 출연했단다. 연기, 좋다.

그의 백인 아내 캐시로 출연한 건 알리시아 비칸데르. 낯익다 싶었는데, 안젤리나 졸리 이어 제2대 툼레이더 역할을 맡았던 바로 그 배우. 불법체류자로 전락한 한인 입양인의 아내 역을 맡아 때론 절절하게 속내를 드러낸다. 프로필 찾다보니 남편이 무려 마이클 패스벤더. ‘엑스맨’의 매그니토 바로 그 배우다.

무엇보다 이 영화 ‘푸른 호수’의 8할은 이 아이가 다 해냈다. 의붓딸 제시 역을 맡아 관객을 웃고 울게 한 시드니 코왈스키. 어디에서 이런 영민한 아역배우를 구했을까 싶을 정도로, 딱 그 역할 이상을 해내면서 영화 감동을 더했다. 제시가 “대디”라고 부를 때, 세상 모든 아버지의 ‘소프트 스팟’(soft spot)이 된다. 존재 자체가 매력.

새로 태어날 아이를 위해 안토니오는 직업을 구하려 애쓴다. 영화 시작. 오른쪽이 제시(시드니 코왈스키) 영화 감동의 8할은 이 아이가 해냈다.

단란한 세 사람. 태어날 아기까지 네 사람의 행복은 안토니오 신분이 ‘시민권 못받은 한인 입양인’으로 밝혀지면서 무참히 깨진다. 현실은 더 아프다.

태어날 아기를 위해 하던 일(타투) 대신 안정적인 직업을 찾으려는 안토니오는 어떤 일로 경찰에 의해 이민국으로 인계된다. 3살 때 미국으로 입양된 한인. 학대하는 양부를 피해 포스터 홈을 전전하며 자란 그는 시민권을 갖지 못한 입양인 중 한 명. 이때부터 그를 추방하려는 세력과 이를 막으려는 안토니오와 아내 캐시의 ‘투쟁’이 시작된다. 의붓딸 캐시의 친부가 이들의 고난에 고통을 더하고. 결국, 추방당하는 안토니오. “대디 가지 마” 외치는 제시와 눈물 쏟아내는 공항 작별 씬.

영화 시작과 끝, 한국 노래 자장가도 삽입했다. 3살 때 미국 입양 온 안토니오가 기억하는 유일한 ‘엄마’. 죽을 뻔하다 살아난 건 그때 갓난아기 때도, 지금도 마찬가지. 그러나 한국으로 ‘추방’당하는 그의 현재가 ‘살았다’라고는 볼 수가 없다는 데 이 영화 아픔이, 먹먹함이 있다.

안토니오처럼 시민권을 받지 못한 미국 내 입양인들은 한인 최소 1만 5,000여 명을 포함해 약 2만 5000~4만 90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0년 소아시민권법(Child Citizenship Act) 통과로 입양 부모 중 한 명이라도 미국 시민이면 입양인에게 자동 시민권을 부여했지만, 적용기준을 만 18세 미만으로 제한해 이때 성인이었던 많은 사람이 제외됐다.

이들도 구제하자며 새 법안이 매년 발의되지만, 지금까지 3차례 무위에 그쳤다. 이 과정에서 안토니오처럼 많은 입양인이 고국으로 쫓겨나고 있다. 우려대로 귀국 후 자살한 사례도 심심찮다. 이 영화 ‘푸른 호수’는 이런 현실을 직유로 저격한다.

영화 무대는 뉴올리언스다. 미국 내 ‘숨은 보석’으로 불리는 소울 시티(soul city). 배경에 깔리는 재즈와 함께 뉴올리언스 브릿지 석양이 일품이다. 다시 또 가고 싶다, 언제나 마음으로 그리워하는 도시.

여기 뉴올리언스 브릿지의 석양. 뉴올리언스 가면 꼭 가보고 싶은 곳.

‘바유’(bayou)는 미국 남부지역 미시시피 강 연안의 늪지대 흐름이 거의 없는 호수(강)를 말한다. ‘바이유’로 발음하는데 왜’ 바유’로 표기하는지는 모르겠다. 극 중에서는 안토니오가 힘들 때마다 찾는 ‘자기만의 공간’이기도 하다.

‘블루 바유’(Blue Bayou)는 린다 론스타트 리메이크로 유명해진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고향 떠난 사람들이 ‘블루 바유로 돌아갈거야’라며 향수병을 노래한 가사가 심금을 울린다는 평가. 극 중에서 캐시가 이 노래를 부르는데, 깜놀. 잘 부른다.

*’블루 바유’ 노래 듣기. https://youtu.be/8Fea_97Oa94

올해 칸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여 주목 받았다. 2021년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작이다.

#사족1. 영화 논란도 있다고. 실제 파양돼 한국으로 추방된 아담 크랩서(신성혁) 사연을 차용했고, 양부모 사진을 무단으로 쓴 점. ‘추방’ ‘불법’이란 이미지를 이들에게 씌웠다는 것 때문에 ‘보지 말자’ 이런 일각 주장도 제기.

#사족2. 시카고에는 이 지역 유일한 한인 입양인 단체 /KAtCH’(Korean Adoptees of Chicago)가 있다. 지난 2008년 결성됐다.(https://www.facebook.com/ChicagoKADs/)

#사족3. 한인 입양인 Tammy Chu 단편 다큐 ‘We Are American’. https://youtu.be/DGcz4uQA510

*’푸른 호수’ 예고편 보기 https://youtu.be/Jh59H_d19Kg

<6:57.1226.해.2021.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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