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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외로울 때가 있다. 분위기에 이끌려 어떤 영화를 ‘선택’했을 때 영화 주인공이, 배경이 그때 내 상황보다 더 고독하고 절망적일 때 그래서 더 동화되는 영화.
톰 행크스 주연의 이 영화 ‘핀치’(Finch)가 그렇다. 러닝타임 115분 동안 암울한 미래, 고군분투하면서 개와, 로봇 둘과 샌프란시스코(금문교)로 기나긴 여정을 떠나는, 죽을 날 얼마 안남은 노쇠한 과학자 ‘핀치 웨인버그’의 얘기.
살아남은 그는 자신이 일하던 연구단지에서 윌리 닮은 ‘듀이’(Dewey)라는 로봇과 ‘사랑하는’ 개 ‘굿이어’(Goodyear)랑 힘겹게 생존하고 있다. 먹을 거 구하러 이미 모래 무덤이 된 도시의 마트를 찾아다니는 게 일상인 그는 노력 끝 마침내 ‘자기 죽어도 개를 돌볼’ 목적으로 직립보행, 말도 하는 로봇을 만들어낸다.(아이작 아니모프의 ‘로봇3원칙’이 나온다. 핀치는 여기에 네번째 ‘개를 지키는 것’을 추가 주입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쓸어버릴 뇌우를 동반한 모래 폭풍을 피해 ‘거점’을 버리고 1,800마일 떨어진 샌프란시스코 행을 결정한다. 세계 곳곳의 멋진 다리(bridge) 사진 중 금문교를 선택하는 핀치. 나 역시 요즘 들어 부쩍 가고 싶은 곳이라 더 관심 간 장면.
강력한 회오리도 만나고, 로봇은 사고만 치고, 누군가에 쫓기고…목적지까지 가는 여정이 결코 쉽지 않다. 게다가 핀치는 피를 토한다…
이 영화의 이런 장면. 인간형 로봇을 만들어 동행하던 중 그에게 이름을 지어준다. 서로 갑론을박. 바퀴 갈아낄 때 잭(jack) 역할을 한 로봇에게 “너 이름 잭 해라” 핀치가 제안하니 로봇 “나 아윈쉬타인 할래” 이런다. 이러저러하다 ‘제프’(Jeff)란 이름에 합의했을 때 핀치, 제프에게 손 내밀어 악수하며 이런다. “웰컴 투 더 월드”.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비로소 내게 와 꽃이 되었다, 이런 싯귀가 떠올랐다. 뭐든, 이름이 존재를 완성한다.(유머도 있다. “나폴레옹 어떠냐?” 했더니 핀치 “걘 작아. 넌 크쟎아.” 이런다.)
영화를 보는 내내 조지 클루니 주연의 2020년 영화 ‘미드나잇 스카이’(Midnight Sky)가 떠올랐다. 나이 든 어떤 분야 전문가(둘 다 해박한 기술자다)가 보호가 필요한 ‘존재’를 돌보며 자신의 남은 삶 전부를 바친다는 것. 그 과정의 쓸쓸함, 힘에 부친 노력들. 결국 소멸할 걸 알기에 고군분투에도 불구, ‘인간’의 남은 생이, 영화의 마지막이 그렇게 녹록치 않다.
단촐한 등장인물들. 영화는 내내 그렇게 잔잔하다. 우리의 영원한 ‘검프’ 톰 행크스의 농익은 연기는 우리를 울고 웃긴다. 저 상황이면 딱 저러겠다, 이러다가도 저렇게까지 난 못하지 하는 지점도 왕왕 만난다. 특히 ‘비인간’인 존재들에 대한 그의 무한 애정과 헌신.
왜 ‘인간’은 피치뿐인가? 이에 대한 답은 로봇 제프의 ‘낮이 그렇게 위험하면 왜 밤에 여행하지 않느냐’는 핀치의 답에서 알 수 있다. “자외선이나 뜨거운 온도, 모래폭풍 등은 예견 가능하지만, 밤은 안 그렇다. 예측 못하는 거, 사람들(people). 사람들이 너를 죽일 것이다.”
실제로 낯선 차량에 쫓기는 장면도 나온다. 인류는 왜? 영화 후반부 핀치가 설명한다. “태양 플레어(solar flare)로 살아남은 사람들 먹을 거 두고 죽고 죽이고 있다. 불라불라”.
‘태양 플레어’? 찾아봤다. 태양 표면에서 강력한 폭발이 일어나며 전자기파와 하전 입자를 쏟아내는 현상을 말한단다. 여하튼 그래서 지구 초토화.
로봇 제프와 인간 핀치와의 ‘감정 교류’도 눈여겨 볼 대목. “내게 또 화낸다”는 제프에게 “네게 너 스스로 컨트롤 못할 변화가 생기고 있다” 말하는 핀치. “이런 걸(감정) 사람들도 느끼냐”고 제프가 물을 때 핀치 답. “늘. 원하든 원하지 않든.” 누군가에겐 식상할 정도 익숙한 게 또 누군가에겐 어리둥절할 정도 낯설다.(그리고 제프, 꿈도 꾼다)
“I’m too old, I’m too sick, l’m too tired, l’m done.”
핀치의 이 대사. 로봇이 오히려 “포기 말라”며 “It’s over.” 절망에 빠진 핀치를 위로하는 역설도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금문교를 480마일 남겨둔 곳에서 핀치는 죽는다. 자외선도 폭염도 없이 나비가 날고 꽃이 핀 곳에서 맞는 죽음. 그리고 둘만 남겨진 제프와 개는 못다한 여행을 함께 떠난다.
‘하우스’, ‘프린지’, ‘왕좌의 게임’ 등 드라마 연출을 맡은 미겔 서포크닉(Miguel Sapochnik)이 연출을 맡았다. 애초 2020년 10월 2일 극장에서 개봉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팬데믹로 연기되다 결국 11월 5일 애플TV로 공개.
IMDb 평점 7.1/10, 로튼 토마토 신선도 72%, 메타크리틱 58%. 구글 liked 92%.
#사족1. 로봇, 섬세하다. 특히 손가락.
#사족1-1. 로봇 제프 목소리 주인공은 캐일럽 랜드리 존스(Caleb Landry Jones). 영화 ‘니트램'(감독 저스틴 커젤)으로 2021년 칸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
#사족2. 영화를 관통하는, 대미를 장식하는 노래 돈 맥클린의 ‘어메리칸 파이’(American Pie), 좋다.
#사족3. 그래서 뭐 샌프란이 살기 좋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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