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생각] 멸치야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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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멸치를 좋아한다. 생선을 좋아하는 개인적인 호사를 떠나 ‘생선 같지 않은’(썸벅 회 못 처먹는 게 생선이랴!) 이 물고기지만 그래도 이렇게 저렇게 많이 좋아해 자주 먹는다.

뭣보다 말린 멸치 고추장 찍어 먹으면 그 자체로 밥도둑이다. 어떨 땐 게장보다 이게 더 땡길 때도 있다. 바삭 씹히는 질감이 고추장 매운맛과 어우러지면 흰쌀밥 목넘김 희열이 웬만한 진미 뺨친다. 단, 멸치는 작아야 한다. 넘 큰 건 비추.

꽈리고추 함께 볶은 멸치볶음도 좋아한다. 입맛 없는 점심, 이 반찬에 신김치면 더할 나위 없다. 모락모락 김 나는 밥 한 숟가락 듬뿍 떠 멸치볶음 얹고 신김치 둘둘 말아 얹으면 누가 먹여주지 않아도 그냥 맛있다. 그렇게, 칼슘 많다는 멸치는 내 중요 기호식품.

근데 콩은 별로다. 안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건강식이라며 콩밥 해주면 혼나며 콩만 빼먹었다니 내 고집도 한몫했다. 파만큼 콩도 싫어했다. 여하한 모든 종류의 콩이 그렇다. 땅콩도 싫어한다.(근데, 콩나물은 좋아한다.)

갑자기 저잣거리에, 소셜미디어에 멸치와 콩 출현빈도가 부쩍 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2년째 건강 챙기라는 주문은 아니고 어느 재벌회장님 난데없는 ‘멸공’ 설파가 시발점이 됐다.

이 재벌 회장님 들고 나와 바이럴되고 있는 ‘멸공’을 받아 이 구호를 어느 대통령 후보가, 뒤이어 한때 대권도 꿈꿨을 서울시장도 못된 한 여성정치인이 설익은 패러디로 동참했다.

일반명사가 느낌표를 가지면 구호가 된다. 일종의 프로파간다. 재벌회장님 연일 ‘멸공!’을 미는 이유는 모르지만, 글로벌 시대, 21세기 대한민국을 이끌겠다고 나선 사람이 그 재벌회장 운영하는 마트에서 멸치와 콩 사며 이 모습을 언론에 뿌렸다. 검사 출신이라 위험하고 그래서 부적격자라고 여겼는데 이제 보니 해학도 재미가 없다. 이래서야 다이내믹 한류 코리아를 신명나게 이끌 수 있나, 실망만 더 커졌다.

이 와중 나씨 성 가진 어떤 여성 정치인 그 못난 윤 후보 풍자를 더 초라하게 따라 했다는 뉴스. 쫌만 참지, 그새 못 참고 자해.

누가 또 멸치와 콩으로 설익은 패러디를 할지 모르겠다. 도대체 창의력이라곤 없는 사람들. 다른 ‘멸콩’은 정말 없나. 진영 논리 잘 발굴 못 하면 궤멸이라는 거, 선택했으니 책임도 질 일이다. 누가 그러더라. ‘멸공하다 공멸한다.’ 정말이지 좀 더 멋진 풍자, 울림 큰 ‘멸콩’을 보고 싶다.

멸치야 미안.

 

*JAN 8. SAT. at 11:00 AM C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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