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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주 기자(yjpark@kakao.com)
*JUL 14. 2022. THU at 7:11 AM CDT
광주민주화운동 42주년을 맞아 하나센터가 지난 5월 20일 이를 기념하는 온라인 행사를 개최했다. 이날 발표자로 나선 것은 노스웨스턴 대학교 연극과에 재학 중인 김하야나(35)씨.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박사 논문을 쓰고 있는 그는 지난해에 이어 2회째 같은 행사에서 강연을 맡았다. “프랑스 혁명, 중국 혁명 못지 않은 광주 항쟁의 역사가 미국 사회에 너무 알려져 있지 않다”는 김 씨는 스스로 영미권에 ‘광주 전달자’ 역할을 자임한다. 그와 지난 9일(토) 전화 인터뷰를 했다.
김하야나씨가 하나센터 광주 행사에서 발표를 맡은 것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다. 그에게 ‘광주’는 무엇일까, 어떤 계기로 ‘5.18’에 천착하게 됐을까, 궁금했다.
김씨는 노스웨스턴대학교 연극과(Interdisciplinary PhD in Theatre and Drama)에 재학 중이다. 2015년 시카고에 왔으며, 내년 졸업을 앞두고 있다.
그가 공부하는 ‘퍼포먼스 스터디스’(Performance Studies)는 연극학에서 파생한 신생 학문이다. 노스웨스턴대는 처음 이를 개설한 두 대학 중 하나. 개인 혹은 집단이 몸으로 하는 모든 행위(퍼포먼스)를 연구한다. 김씨는 “작은 제스처라도 관객의 많고 적음을 떠나 뭔가 보여주기 위한 행위라면 모두 퍼포먼스”라며 “행위자 자각 여부를 떠나 그의 몸짓을 관찰하는 게 내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런 퍼포먼스 실례로 꼽는 게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다.
그런 점에서 김씨에게 ‘오월 광주’는 그 자체 중요한 연구 대상이다. 시민군의 저항과 군대의 강제 진압, 이 과정의 수평적 혹은 수직적인 그들 행위를 매개로 김씨는 항쟁 주역 혹은 참여자들의 행동을 통해 ‘광주의 의미’를 탐구한다. ’1980년 이후’ 광주가 배태한 모든 ‘퍼포먼스’ 또한 김씨가 주목하고 있는 대상이다.
그가 광주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이화여대 영문학과 석사(희곡) 공부 중이던 2014년, 2015년 우연히 보게 된 두 편의 광주 관련 연극이었다. ‘푸르른 날에’와 ‘100% 광주’가 그것. 김씨는 일전 한 글에서 “2014년 그때 눈물범벅으로 이 공연을 봤다”며 “광주항쟁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대인 저의 진로를 바꾸게 됐다”고 토로했다.
노스웨스턴 대학교 박사 과정 입학 원서에도 ‘가장 좋아하는 공연’으로 당시 두 연극을 적시했다. 다만 입학 초기 “5·18로 논문을 써야겠다, 이 정도는 아니었다”던 김 씨는 이후 수업을 듣고 교수와 많은 얘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논문 주제로 ‘오월 광주’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2018~2019년 코로나19 팬데믹 직전 1년 여 광주에 살면서 직접 ‘광주’를 체험했다. 뉴욕 유명 학술 재단 ‘앤드류 W. 멜론 파운데이션’(Andrew W. Mellon Foundation)이 이 취재를 지원했다. 그의 광주 연구를 본격 시작한 계기였으며, 그의 그의 말에 따르면 ‘인간으로서 성숙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이 기간,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많이 ‘광주’를 알았다. 김 씨는 “다른 사람 슬픔을 내 것처럼 아파하는 사람들이 그때 광주에 많았고, 지금도 많다”고 말한다.
광주를 다녀와 적지 않은 성과물도 냈다. 2020년 7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판사에 펴낸 책 ‘케임브리지 컴패니언 투 인터네셔널 시어터 페스티벌즈(Cambridge Companion to International Theatre Festivals)’ 동아시아 부문에 5·18 역사를 소개한 것도 그 중 하나.
홍콩 출신으로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미디어 예술가 아이작 청(Issac Chong)이 2016년 광주 미디어아트 페스티벌 당시 광주 도청 앞 분수대에서 펼친 퍼포먼스 ‘미래로부터의 한 목소리’(One Sound of the Futures)를 아티스트 인터뷰 등을 통해 이 글에 담았다.
아울러 2020년 전남대 40주년 학술대회에서 발표를 맡았고, 학회에서는 발표자 글을 모아 책을 냈다. “내가 한글로 쓴 5.18 첫 책”이라는 게 김씨 설명이다. 2021년에는 하와이대 출판사가 발행하는 ‘아시안 씨어터 저널’(Asian Theater Journal’에 1988년 초연한 연극 ‘금희의 오월’을 소개했다. 광주 있을 때 금희 어머니를 만나 인터뷰 한 내용과 함께 연극을 본 소감을 실었다. 이와 함께 전두환 대통령 시절 망월동 제사를 빌미로 묘지에서 벌인 시위를 토대로 한 글이 미시간대학 출판물 한 챕터로 실릴 예정이다.
그가 내년 졸업을 앞두고 막바지 쓰고 있는 논문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김씨는 논문 키워드를 크게 3개로 축약했다. 몸과 여성, 퍼포먼스가 그것이다.
그의 설명. “몸이 중심 된다는 건, 항쟁 당시 거리에서, 도심에서 쏟아져 나온 군인과 시민들이 같이 싸웠다. 군인들은 때리고 찌르면서 겁을 주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줬고 시민들은 숨기보다 엄청난 규모의 시위로 더 격하게 대응했다. 무대 밖 더 큰 장소에서 벌인 집단적인 퍼포먼스의 주인공들이다. 5·18에서 ‘몸’이 중요한 것은 이때문이다.”
이들이 5·18 당시, 1980년 이후 대립하며 보인 모든 행위는 김 씨가 ‘퍼포먼스’로 풀이한다. 군사작전도, 시위도, 망월동 제사도 공공장소에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종의 퍼포먼스로, 주장을 설파하는 커뮤니케이션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식 잃은 어머니가 소복을 입고 특정 공간에 있을 때 그 비주얼이 주는 힘, 김씨는 이런 ‘행위’의 의미를 논문에 담을 계획이다.
여성은 김씨가 갖는 또하나의 ‘광주’ 속성이다. 기존 광주 항쟁 평가가 남성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 남성 못지 않게 기여도 큰 여성들을 주무대에 올리고 싶다는 바람이 크다. 김씨는 “남성뿐 아니라 여성들도 5.18에 큰 역할을 했다”며 “남성 위주로 각인된 역사를 다시 써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다른 각도의 연구를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논문은 내년 완성 예정이다. 책으로 낼 계획도 있다. 그는 “이를 위해 저명한 아카데미 출판사와 계약을 체결할 계획”이라며 “책으로 나오기까지 적어도 5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의 모든 작업은 5·18을, 광주를 영미권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 귀결한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으로 그가 꼽는 것은 “더 많은 광주 연구자가 배출돼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중국 혁명, 프랑스 혁명에 버금 가는 5·18 역사를 다루는 더 많은 책이 쓰여져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아마존에서 광주 책을 검색하면 왜곡서가 많이 뜨는 게 현실, 최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영역본 발간을 그가 기뻐하는 이유다.<영국 독립출판사 벌소(Verso) 5월 발간. 영문 표제 ‘광주 봉기,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한 반란'(Gwangju Uprising The Rebellion for Democracy in South Korea)>
그는 ‘광주’에 대한 영미권 사람들 반응이 뜨겁다고 전했다. “몰라서 모르는 것, 광주를 설명했을 때 감동 안 받는 사람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김씨는 “광주의 육성을 이들에게 전달하는 게 내가 하는 역할”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김씨는 내년 졸업 후 교수 임용을 목표로 하고 있다. “창작(연출)보다는 창작물을 비평하는 쪽에 가깝다”는 그는 “학교에 남아 내 역할을 이어가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하야나’라는 이름은 ‘하얗고 예쁘게 자라라’는 뜻을 담아 아빠가 지어 준 한글이름이란다. 그에게 던진 마지막 질문. ‘김하야나에게 광주는?’
“아침에 일어나게 하고,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반성하게 하는 것.” 잠깐 망설이던 그의 대답이다. 어쩌면 내일 광주는 오늘 그의 그것보다 더 풍성해질 지 모르겠다. 어떤 모습일까, 솔직히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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